누군 ‘주 4일제’라는데···현실은 주 40시간도 못 지켜: 경향신문(10.01)

 
 
ㆍ근로시간 탄력적으로 조절 생산성 높이는 국내외 회사들 점차 늘어
 
# 서울의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과장은 간혹 일요일 오후에도 회사로 불려간다. 이유는 부장이 임원에게 건네줄 월요일 회의용 보고서를 준비하기 위해 찾기 때문이다. 그는 “굳이 주말에 불려나가야 하는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야간이나 휴일 근무수당이 정확히 계산되지 않는 때도 많다. 이런 문화에서는 육아 등 가사노동 분담이 사실 더 많은 여성들이 버티기란 훨씬 힘든다.
 
# 충북 충주시의 화장품 기업 에네스티 황인호 과장(43)은 “요즘은 주말 연휴가 슬슬 지겨울 때가 있다. 남들은 월요병이 있다는데, 심지어 월요일 출근이 기다려지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일한다. 금요일 오후 방과후 아들과 사슴벌레 잡기를 하는 등 가족과 충분히 쉬고 나면 일에 더 집중력이 생긴다고 했다. 이제는 주 5일제를 하는 다른 직장이라면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국내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줄기로 한다. 일단 주 40시간을 채우려면 하루에 10시간씩 일하고 4일만 근무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평소 근무시간에 담배를 피우거나 간식을 먹고, 1시간여 걸리는 점심시간이 왠지 낭비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시간을 줄이고 일에 몰두한다면 하루 6시간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하루 2시간 정도는 사회적 낭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마존은 주 30시간 주 4일 실험
인간은 대체 하루 몇 시간을 일하면 될까. 산업혁명 초기만 해도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심지어 10살도 안 된 아동들이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는 게 보통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하루 10시간씩에 이어 근래 8시간까지 줄었다. 노동환경 개선의 역사는 곧 노동시간 줄이기 과정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루 8시간 노동에 이어 일주일에 5일 근무제도 보편화됐다. 최근에는 하루 6시간 노동 내지 주 4일 근무제가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과연 노동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지, 관련 실험들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아마존은 주 30시간, 주 4일 일하는 시간제 노동자 팀을 채용키로 했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월~목요일까지 매일 오전 10시~오후 2시까지 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은 탄력적으로 일하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야후 재팬’을 운영하는 소프트뱅크그룹의 야후가 몇 년 안에 목표로 주 4일 근무제의 전면 도입을 검토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전 직원 5800명에게 주 3일 휴일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2000년 사회당이 유럽에서 가장 적은 주 35시간 노동제를 도입했으나 최근 법 개정을 놓고 갈등 중이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유연근무(탄력근무)는 시대적 변화상과 맞물려 더 주목받는다. 인공지능(AI)까지 보편화된다면 노동시간 단축은 물론 일자리 자체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옛날 회계장부를 뒤적여가며 주판으로 임금체계를 관리하던 때라면 하루 10시간 일해도 모자랐을 것이다. 반면 컴퓨터의 힘을 빌리는 덕분에 하루 10시간씩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는 세상이 됐다. 노동자로서는 중노동에서 해방돼 기쁘기도 하고, 때론 기계에 밀려나 슬프기도 하다. 인간이 어떻게 이용할지에 달렸다.
 
한편 여성 노동력의 확대 필요성은 유연근무를 가속화하고 있다. 남성이나 여성 혼자서 벌어서 살기가 어려워진 시대다. 특히 일본은 고령화로 노동인구가 부족해서 여성 노동력을 더 찾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현실에 직면했다.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는 남녀 모두에게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형태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하루 노동시간을 줄일 필요성이 커지게 됐다.
 
에네스티-1시간 늘린 대신 주 4일제
9월 29일 찾아간 충주의 에네스티는 카페 같은 분위기로 여느 회사와 달랐다. 이곳에는 ‘불금(불타는 금요일)’ 대신 ‘불목’이라는 말이 통용된다. 매주 금·토·일이 휴무이기 때문이다. 2011년 30대 후반 기혼 여직원이 하루를 더 쉬게 해달라고 한 부탁이 계기가 됐다. 3명이 시범적으로 주 4일제를 시작했다. 정재욱 마케팅사업부 본부장도 당시 참여했다. 정 본부장은 “복지단체 봉사활동을 위해 수요일도 휴무를 했다. 그 대신 평일은 더 집중적으로 일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후 직원들에게 주 4일제 의향을 물었더니 80% 이상이 원해 우성주 대표이사는 2013년부터 전격 실시하기로 결단했다. 대신 오전 오후 30분씩 일을 더한다. 오전 8시30분 출근, 오후 6시30분 퇴근이다. 지역 대리점에는 양해를 구해야 하는 등 초반에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온라인 부문의 경우는 금요일 돌아가면서 주문을 받는 등 부서별로 차이는 있다.
 
정 본부장은 “예전에는 일에 계속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더 효율성 있게 일하게 됐다. 최근 2년은 매출이 100억원씩을 돌파하며 올랐다. 생산성이 높으면 높지 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직원 이직률도 주 4일제 전에 약 10%였다면 지금은 3~4%대로 줄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길어진 휴무에는 학원을 다니는 등 자기계발을 하거나 2박3일로 일본·홍콩 등지 여행을 다니는 직원도 있다. 올해 2월 경력으로 입사한 디자인팀 김병주 사원(33)은 벼농사까지 짓는다. 김씨는 “영업을 한 전 직장은 주 5일제인데도 일도 더 하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회사에서 디자인 교육용 학원비도 전액 지원해준다”고 밝혔다. 김씨는 “주 4일제에서는 스트레스와 체력 조절이 되는 덕분에 근무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한다. 회의도 최소화하고 간식이나 휴식을 각자가 편하게 하며 업무시간이 늘어지지 않도록 짧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다만 마케팅 쪽은 되도록 목요일까지 주문을 마감하려고 하지만 간혹 금요일 전화 응대나 외부 만남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수당 적용이 숙제로 남았다. 황인호 과장은 “일을 좀 더 해서 수당을 더 받고 싶기도 하지만, 평소 3일 휴무로 보상받는 느낌도 커서 딱히 회사에 요구하는 편은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도서출판 보리-노동 줄이기 중요. 하루 6시간 일하기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의 도서출판 보리는 오후 4시가 되면 일찌감치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동화작가이자 변산공동체학교를 운영하는 윤구병 대표가 2012년 직원들에게 미국 식품기업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에 관한 책을 건넸다. 당시 직원들 반응은 당황하기도 했고 냉담한 이들도 있었다. “의도는 좋지만 실제로 되겠어?” “그곳은 제조업이니까 가능한 거 아냐” 등.
 
현실적 걸림돌은 노동시간 감소에 따른 임금 삭감이나 거꾸로 연장근무 시 수당 지급 여부였다. 저자를 만나 밤새 술을 먹으면 노동시간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나. 영업부가 지방 도서전 등 행사에 가는 등 출장 때도 미슷한 고민이 생긴다. 편집자도 현장 취재를 다녀야 할 때 수당 계산이 쉽잖다.
 
일단 경영지원실, 부장, 평직원이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3개월 해보며 시행규칙을 만들었다. 김성재 기획실 부장은 “밤이 되면 정신이 초롱초롱해지며 야근에 익숙한 사람이 오후 4시까지 일을 마치려니 처음엔 체력이 달리고 숨이 막혔다”고 말했다. 전에 오후 4시는 간식 타임이었다. 보리는 회의 수를 줄이고 시간도 절반인 30분 정도로 당겼다. 저자나 서점 측과의 협업도 문제였다. 저자와의 회의도 가능한 한 오후 4시 전에 잡고 4시 이후는 급한 일만 처리했다.
 
연장근무 때 보상수단은 수당 지급이냐, 시간 적립이냐를 놓고 고민한 끝에 후자로 결정했다. 출판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수당을 주는 건 경영에 부담이 커져서다. 보리는 야근할 경우 사내망에 시간과 연차를 적립해놓는다. 이후 오전·오후 반차나 하루 휴무를 쓰거나 다른 날과 붙여 장기휴가도 가능하다. 적립은 1개월에 18시간까지만 가능하다. 현실은 그보다 더 일하는 경우도 있어서 어떻게 풀 것인지가 과제다.
 
지난해 시행 3년을 평가하는 TFT는 6시간 노동제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만족도는 80~90%대라고 했다. 매출은 감소했으나 6시간 노동제 때문이 아니라 전반적인 업계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회사는 해석했다. 보리는 많은 책을 내는 곳은 아니다. 타사가 보통 연간 40~50권을 내면 보리는 23~24권을 낸다. 인원도 줄고 노동시간도 6시간으로 감소했으나 출판량은 비슷하게 유지된다.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진 셈이라고 자평했다. 심준엽 노조위원장은 “아직 완전히 체계화는 안 된 상태다. 4시까지 끝내지 못하고 이어지는 일도 있고, 30분을 더하면 시간 적립을 할지 고민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송추향 편집자는 “일의 양은 비슷해도 확실히 일의 밀도가 높아졌다. 연장근무를 해도 6시 정도여서 부담도 적다. 퇴근 후 아이를 돌보는 데도 낫다”고 말했다. 송씨는 “마감 기간에는 야근이 불가피한데, 18시간 안에 적립하려고 일에 효율성을 높이는 건 결국 개인 몫 같다”고 말했다.
 
한화종합화학-교대조 추가, 시간 줄여 일자리 나누기
일상적인 취지로 도입한 것은 아니지만 경영위기 타개책으로서 주 4일제 내지 주 30시간대 노동을 도입한 곳도 있다. 삼성 계열이었다가 2014년 빅딜로 한화로 넘어온 한화종합화학의 경우다.
 
세계 경기침체와 중국 업체들의 증설로 화학제품 과잉공급 문제가 불거졌다. 한화종합화학은 울산공장의 생산라인 3개 중 1개 라인을 멈춰야 했다. 문제는 12~16명 정도의 남아도는 인력. 기존에는 4개 조가 돌아가며 3교대(아침·저녁·밤샘)로 근무했다. 16명이 한 조로 구성돼 4조에 총 64명이다. 밤샘근무를 한 조는 다음날 하루를 쉬는 식으로 돌아갔다. 사흘 일한 뒤 하루 쉬는 꼴이었다.
 
회사의 선택은 인력감축 대신 교대제 변경이었다. 5조 3교대 체제로 바꿨다. 조당 13명으로 줄여 5개조에 총 65명으로 편성됐다. 사흘 일하고 이틀을 쉬는 식이다. 개인별 노동시간은 기존에 주당 42시간에서 33.6시간으로 줄였다. 8시간 기준으로 4일 근무하되 1.6시간을 더하는 식이다.
 
일하는 시간을 줄인 만큼 임금도 20% 삭감했다. 박진현 인사지원팀장은 “시급 체계는 그대로 유지하지만 일하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에 급여도 감소하게 됐다”며 “과거에 10시간 일해서 100원을 받았다면 지금은 8시간 일해서 80원을 받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교대제 조정과 근로시간 감축은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면서도 “다만 5조3교대제의 효과가 좋은지 검토해 장기적으로 도입할 가치가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현실은 주 4일제를 얘기하기는 한참 일러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긴 노동시간(2124시간)을 갖고 있다. OECD 회원국 평균(1770시간)보다 515시간 길고, 가장 짧은 독일(1371시간)보다 914시간 길다. 특히 근로기준법에 연장근로를 포함해도 주 52시간을 넘지 못하게 돼 있지만, 52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2015년 기준 18%나 된다. 반대로 파트타임 노동자(주 35시간)보다 훨씬 짧은 주 15시간도 채 안 되는 초단시간 노동자도 많다.
 
주 4일제는 먼 얘기, 주 40시간부터 지켜야
주 40시간 노동은 5인 미만 사업장 등은 제외하는데, 대상자 중에서도 3분의 2 정도만 시행한다. 3분의 1은 무노조나 영세사업장으로 노동조건이 열악해 안 지킨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주 40시간을 어기면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며 “이런 현실에서 주 4일제는 거론하기조차 어렵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 단축 논란의 핵심은 일하는 시간을 줄인 만큼 급여를 줄일지, 대체 휴일 등으로 대안을 마련할지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은 “급여 감소는 일정 부분 감수하되 기본급을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고용보험에 ‘기금’을 만들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용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김 위원은 밝혔다.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거시경제실장은 “노동계는 근로시간을 줄여도 수입 감소 없이 하자고 요구하지만 결국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본질적으로 노동시간 줄이기는 분배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인류의 생산력은 다 같이 웬만큼 누릴 정도로 증대됐다. 적절히 나눈다면 지금보다 적게 일하고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의욕을 저하시키지 않으면서도 일자리를 나누거나 노동시간을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묘책을 찾는 게 숙제가 됐다. 국내외에서 도전 중인 실험들이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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