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희망버스와 태양의 학교/이수호

 
- 이수호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president1109@hanmail.net)
 
 밀양으로 달리는 희망버스의 분위기는 쌀쌀한 날씨 탓도 있었지만 팽팽한 분위기에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아직도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쌍용자동차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사투를 벌이던 대한문 앞에서 출발하는 상징적 의미도, 참가자들의 마음을 어떤 보이지 않는 끈으로 하나로 묶는 느낌이었다.
 1호차 1번 자리에는 모든 싸움의 앞자리를 지키는 팔십 노구의 백기완 선생님께서 흰 머리칼을 날리며 말없이 앉아 있었고, 몇 칸 뒤에는 엄마 손에 이끌려 온 초등학교 학생 둘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알만한 교수들이나 여러 단체의 활동가들도 보였지만 대체로 서로 처음 만나는 시민들이었다. 
 밀양의 산과 들은 아름다웠다. 추수 끝난 들녘의 텅 빈 넉넉함이 작은 강의 길을 만들고 있었고, 부드럽고 낮은 산들이 들과 강을 안고 도닥거리며 잠을 재우는 어머니처럼 앉아 있었다. 마을은 들과 산 사이에 강물을 내려다보며 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정답게 도란도란했는데, 집집마다 잎 떨어진 감나무엔 까치밥이 한 두 개씩 빨갛게 홍시로 영글어가며 배고픈 겨울 까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로웠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고향 마을로 들어가는 집 떠났던 사람들처럼 마음이 따뜻했다.
 그런데 그 마을 뒷산에 100미터도 넘는 어마어마한 철탑이 세워진다니, 그 철탑을 잇는 전선으로 평소에도 윙윙 소리를 내며 초고압 전기가 흐른다니, 한 번 사고로 일류 전체를 몰살시킬지 모를 핵 발전의 위험을 거대한 도시를 위해 감수하라고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며 현기증을 느꼈다. 아름답고 정다운 고향 누이 같은 앞산 뒷산에 인간을 말살하는 탐욕스런 자본의 삽날이 강간하듯 부드러운 흙에 꽂힌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할매, 할배들은 한결같이 외치고 있었다. 
 “제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 앞으로도 손자, 손녀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제발 그냥 두세요. 제발 손만 대지 말아 주세요.”
 이분들에게 조그만 희망이라도 드리기 위해, 그 산과 들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달려온 희망버스는 철탑 공사장으로 올라가는 산길 초입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경찰들이 산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 위 초겨울 하늘에는 공사장의 자재를 나르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눈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다음 날은 서울 시청 앞 스페이스노아에서 펼쳐진 탈핵을 통해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를 만들어 보려는 모임인 태양의 학교 창립 1주년 행사에 함께 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핵에 대해 정확하게 교육하여 그 위험성을 가르치고, 궁극적으로는 핵에서 완전히 벗어나 지속 가능한 생태적 삶을 살도록 함께 실천하는 모임이었다. 초중등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들로 이루어진 이 모임은 비록 아직은 조직이나 활동이 미약해 보였으나 오히려 거기에 희망이 반짝이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국내외 사례를 통해 핵의 위험성을 가르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하는 살아 있는 모임이었다.
 1주년 행사에 모인 학생들을 비롯한 교사, 학부모들도 인류의 존망이 걸려 있는 무거운 주제인 핵을 이야기하면서도 진행이나 내용은 밝고 가벼웠다. 절망을 딛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젊음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딱딱한 연설 대신 신나는 퀴즈로 내용은 진행되었고 즉석 시 짓기는 각자가 실천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도 아이들 틈에서 낄낄거리며 시 한 수를 썼다.
 
탈핵
 
우리가 핵을 거부하자는 것은
스스로 가난해지자는 것이다
좀 더 불편해지고
좀 더 느려지고
좀 더 어두워지고
좀 더 추워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지속적으로 가벼워지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 희망버스도 타고 태양의 학교도 다녀오면서 절망 속에서도 샘솟는 희망을 보았다. 그것은 나의 조그만 실천 속에서 싹트고 있음을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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