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폴라니의 추'를 움직이려면

 

이상헌 ILO 연구조정관(genevelee@gmail.com)

'폴라니의 추' 라는 게 있다. 20세기 중반에 명성을 떨쳤던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의 자본주의 경제 분석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자본주의는 노동, 토지, 화폐와 같이 상품이 아닌 것을 시장논리에 입각하여 극단적으로 상품화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체를 위협한다. 경제위기도 그렇게 해서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반드시 파국에 직면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규제하고 노동을 보호하려는 제도적 정책적 개입이 생긴다. 역사적으로 노동법이나 복지국가도 그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물론 시장규제가 또 지나치게 진행되면, 이에 대한 반발로 시장주의가 득세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시장근본주의와 극단적 개입주의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한다. 폴라니가 세계 2차 대전 이후까지의 자본주의 역사를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다.

2008년 경제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폴라니의 추'가 되돌아오는 역사적 대전환이 시작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번 경제위기가 명백히 시장의 실패였고 극단적인 시장근본주의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단순한 금융시장의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80년대 이후로 진행된 금융시장 규제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와 같은 시장주의적 정책에 기이한 구조적 위기였다. 그 결과 소득 불평등은 급격하게 증가해서 경제효율성조차 위협하게 되었다. 조셉 스티글리츠가 주장했듯이 경제위기는 "불평등의 대가"였다. '폴라니의 추'가 오른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시작된 지 오년이 지났지만, '폴라니의 추'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조짐이 아직 보이질 않는다. '실패한' 시장을 교정하려는 노력이 드물었다. 물론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으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경우가 태반이다. 금융시장을 규제하려는 국제적 정책 공조 노력은 변죽만 올리고 아직 큰 성과는 없다. 국가별로 산발적인 노력이 있을 뿐, 유럽 연합 내에서조차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노동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소득 안정성을 높이려는 정책 노력도 좌초 분위기다. 오히려 복지제도를 공격하는 목소리만 높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제위기의 원인도 시장근본주의적 정책이 아니라 "원칙없는 복지주의"라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야말로 주객전도다.

그 결과는 최근 통계지표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경제위기 발발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으나 납세자들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생존했던 금융기관들은 이미 경제 이전의 수익성을 회복했다. 다른 실물 부문은 아직 힘들다. 일반 노동자들의 월급은 삭감되었지만, 금융기관 임원의 연봉은 다시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고 있다. 대기업은 급성장한 이윤 덕분에 현금을 쌓아두고 있지만, 일반 가계는 여전히 빚에 허덕대고 있다. 불평등은 경제위기 동안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때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경제위기 이후 이윤몫은 전후 최고 수준을 갱신하고 있다. 임금몫은 그만큼 계속 줄고 있다(그림 참조). 불평등 개선을 통해 안정적인 소비수요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건전한' 성장을 도모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모델에 대한 약속은, 현재로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폴라니의 추'가 왼쪽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오른쪽으로 계속 밀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흥미롭게도 금융부문의 전문가들조차도 우려스러운 견해를 내놓고 있다. 임금몫은 줄어 소비수요는 상대적으로 감소하지만, 상대적으로 증가한 이윤몫은 소비수요에 대한 불안감으로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경제가 빠른 시기에 회복하여 성장하기는 힘들다. 최근에 파이낼셜 타임즈가 "자본이 노동의 몫을 채어갔지만, 승리는 공허할 뿐"이라는 기획 기사를 실은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Financial Times, "Capital gobbles labour's share, but victory is empty", 2013년 10월 14일자). 이 기사는 한 투자은행 관계자를 인용했다. "(이런 추세라면) 자본주의는 자신을 파괴할 씨앗을 뿌린다고 한 마르크스가 결국 옳지 않을까 걱정이다. 소비 수요가 없어진다면 자본주의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그래서 불안하다.

그렇다면, 이번 경제위기에서 왜 '폴라니의 추'는 움직이지 않는가? 그 해답은 '폴라니의 추'는 '갈릴레오의 추'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갈릴레오의 추는 중력의 힘으로 자동적으로 움직이지만, 인간의 경제에는 그런 중력이 주어져 있지 않다. 결국은 사람이 움직이어야 한다. 추를 움직일 사회정치적 세력이 있어야 한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기에는, 새로이 형성된 노동조합과 시민세력들이 폴라니의 추를 움직였다. 뉴딜도 그렇게 나왔다. 유럽의 복지국가도 마찬가지다(물론 2차 대전의 역할도 무시는 못한다). 하지만, 이번 경제위기에는 '월스트리트 점령운동'과 같은 파편적인 움직임 외에는 눈에 띄는 게 없다. 1%의 힘은 더 강고해졌다.

결국 자본주의를 보다 안정적이고 인간적으로 바꾸는 일은 힘의 균형을 새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금융시장을 개혁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노동시장을 바꾸고, 시민적 권리로서 최소한의 소득 보장을 제공하는 사회보장 제도를 구축하는 것도 힘의 균형 회복에 기초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일시적 성공이 있더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이를 위해 노동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 긴급하다. 특히 노동에 제 목소리를 주는 게 중요하다. 노동에게 발언권이 없으면, 시장주의의 일방통행을 막을 길이 없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정부들이 그나마 약해진 노동의 목소리를 더 약화시키려고 안달이다. 아예 목소리를 막으려 하는 정부도 있다. 이래서는, '폴라니의 추'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 대가는 지금보다 더 혹독할 것이다. 베트남 전쟁이라는 거대한 추에 맞섰던 존 레논을 패러디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건, 노동에게 목소리를 주자는 것일 뿐이다"(All we are saying is give labour a voice). 자본주의를 염려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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