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유령이 되어버린 진보정당들에게 필요한 것 /김윤철

 
- 김윤철(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진보개혁 세력의 범위를 넓혀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놓고 볼 때, 진보개혁 세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수치 상으로는 선전했다고 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인천과 경기를 놓쳤지만 서울과 강원을 지켰고, 대전과 충청을 차지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아성인 대구, 부산에서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새누리당에 패했다. 광역의원과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에 우위를 점했다.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서 ‘여야 무승부’라는 판정이 내려진 이유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거둔 수치상의 성적은 세월호 참사의 덕이다. 세월호 참사로 현 정부 여당에 대해 비판적인 의사를 표출해야겠다 마음 먹은 (진보개혁 성향) 유권자들의 결집과 선택에 힘입었다는 것이다. 이 힘에 기대어 새정치민주연합은 당 합친 것 말고는 한 것이 없는데도 그나마 무승부라도 거두었다는 것이다. 올 3월 초 민주당과 안철수 새정치 신당이 통합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서도 정당 지지율이 줄곧 20%대 초에 머물러 왔음을 감안할 때, 또 2010년 지방선거 때와 달리 무상급식과 같은 정책적 쟁점도 만들지 못했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유권자의 마음을 사는 별다른 실천이 없었음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역풍 맞을까 두려워 정부심판론을 세월호 심판론으로 바꾸고, 안전을 정책적 대안이 아닌 구도전략을 위한 구호로 삼았을 따름이었다. 
 
진보개혁 세력을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의 진보정당들로 좁혀 보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진보정당들의 이번 지방선거 성적은 한 마디 말해 패배다. 그것도 아주 참담한 패배이다. 단지 새누리당 혹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비해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열을 논하기는커녕, 아예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닌, 진보정당만의 고유한 의제도 대안도 없었다. 대구의 김부겸이나 부산의 김영춘 같은 의미있는 패배와 양보를 감수하는 정치인도 없었다. 선거 결과를 들여다 보면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거의 사라졌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지역거점을 더 확보하기는커녕, 인천, 울산 등지에 갖고 있었던 거점마저 상실했다. 득표율은 당연히 눈에 띠게 하락했다. 선거 결과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면서 뭔가 긍정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다. 희망을 살릴 약진의 흔적이 도통 없다. 이제 진보정당들은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그야말로 유령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서울과 경기 등 주요 광역선거에서 후보를 내지도, 끝까지 완주하지도 못했다. 완주한 경우에도 광역 및 기초단체장 통틀어 단 한명의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광역의원은 지역구에서 노동당 단 한 명, 그리고 비례대표에서 통합진보당이 세 명을 당선시켰을 따름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3명의 기초단체장과 32명의 광역의원을 배출한 것과 비교하면 크게 후퇴한 것이다. 광역비례 선거에서는 원내 정당인 통합진보당과 정의당마저도 2~4%대에 머물렀다. 통합진보당은 광주 13.7%, 울산 12.1%, 전남 12.1%, 전북 8.3%, 경남 5.3%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2~4%대에 머물렀다. 정의당은 전북 7.0%, 제주 6.2%, 전남 5.5%로 세 곳만 4%를 넘겼다. 노동당과 녹색당은 출마지역 기준으로 볼 때조차 2%도 얻지 못했다. 2002년 이후 2010년 지방선거 때까지 (진보정당들 전체 합산) 평균 8~12%를 기록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정당득표율이 절반 이상 하락한 것이다. 
 
교육감 선거결과가 그나마 위안을 준다. 총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13명의 진보개혁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목도하며 경쟁과 효율성보다는 협력과 공정성을 중시하는 교육관이 더욱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승리 요인은 보수진영의 분열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즉 진보개혁 세력의 성과라고 자축만 할 일이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과연 자신들만의 온전한 성과에 기대어 국민들의 지지를 올리고, 진보정당들은 유령의 신세를 벗어나 다시금 실체를 회복할 수 있을까? 
 
사실 진보개혁 세력의 현재와 앞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당장 이번 선거 결과가 문제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새 정치를 기치로 경제민주화를 쟁취하고 민생을 개선하겠다고 표방해 왔으나, 지난 2012년 대선 이후 어떤 구체적인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말로 ‘말로 때우는 정치’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21세기 한국병’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고용의 불안정과 소득의 불공정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집요한 실천은 물론, 뚜렷한 정책적 대안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국회의 울타리 안에서 언론들만을 상대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진보정당들은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이전 시기에 비해서 활력이 떨어진다. 신문에 한 줄이라도 실리기 위해, 즉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고심하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연이은 분열과 현 집권세력의 종북주의 공세와 진보정당을 떠나간 이들을 탓하며 탄식만 하고 있다.  
 
정치를 계속 하겠다면 그리 마냥 있어서는 안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야권 전체를 아우르며 정권교체 준비를 선도해가는 제1야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민생개선을 위한 범야권 차원에서의 실천 단위를 구성해야 한다. 진보정당들, 시민들과 협력의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 단위를 통해 시민을 정치적 주체로 모셔 성과를 내면서 유권자들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야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진보정당들은 자기들만 중요타 생각하는 이념을 되뇌이는 것이 아니라, 절박함을 갖고 지금의 빈한한 처지에 부합하는 현실적 목표와 전략을 벼려야 한다. 진보정당들에게 부족한 것은 공약집에 담을 좋은 정책이 아니라, 그 정책을 실현할 힘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얻는데 필요한 유권자의 지지를 담아낼 큰 그릇이다. 그 그릇을 마련해야 온전하게 홀로 서기 위한 자원, 즉 국정운영 참여 경험과 실력있는 정치인들을 보유하고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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