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위험 사회에서 벗어나기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roh4013@hanmail.net)

 
20대 총선 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세월호 참사 2주기 행사가 지난 16일 진행되었다. 꿈도 펼쳐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어린 넋들을 위로하듯 하늘은 봄비를 내려주었다. 세월호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목소리는 높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도 많은 것이 의문투성이다. 여야 합의로 ‘4·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정부·여당의 비협조로 위원회는 번듯한 활동성과 하나 내 놓지 못한 채 6월 말이면 문을 닫는다. 세월호는 여전히 물속에 있고, 유가족들은 2년 전과 마찬가지로 거리에 나앉아 있다.
 
세월호는 2년 전에 끝난 참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의 재난이다. 한화 케미칼 폭발 사고, 고양터미널 화재 참사, 장성요양병원 참사,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 등은 세월호 전후 우리가 겪은 대표적인 사고였다. 반복되는 대형 사고들은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인가를 의심케 한다. 70∼80년대 개발과 건설의 과욕과 편법주의, 그리고 부정부패가 삼풍백화점 참사의 원인이었다면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자본의 이윤극대화, 정부의 무능력한 재난 관리시스템은 세월호 참사로 귀결되었다. 성장을 지탱해온 힘 자체가 대규모의 위험 요인을 발생시켰다는 점에서 성장과 위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경제성장이 생활수준의 향상과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산업재해와 환경파괴를, 그리고 연이은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나마 위험 및 안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확산되고 있지만 위험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도 개선 및 사회적 공론화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인적 요인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비교적 손쉽게 책임자를 색출하고 그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쏟아 붓게 함으로써 대중들의 격한 감정을 다독여주는 효과를 거둘 수는 있다. 그러나 자칫 ‘비난의 의례 정치(ritual politics of blame)’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책임자 처벌에 그치지 않고 사고와 재난의 구조적인 원인에 눈을 돌려야 한다. 재난·안전사고 조사 및 대응에 있어 ‘징벌주의’에서 ‘원인규명 위주’로의 안전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한국사회의 위험 재난사고의 빈발은 경쟁력·효율성 담론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있고, 작업장의 안전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 난다. 한국은 지난 14년간 평균 해마다 242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국가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산재사망 1위 국가이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망자는 53명으로 일본(20명), 독일(17명), 영국(4명)보다 크게 많다. 지난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3만1768명이고 부상사고 등으로 다친 노동자는 118만명이다. 6분마다 1명이 산재로 다치고 5시간마다 1명이 사망하는 산업재해 후진국이다.
 
최근 산업재해에 내몰리는 노동자들 상당수가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노동자라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 경기도 부천과 인천의 휴대전화 부품 납품업체 노동자 5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이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들은 삼성과 LG의 3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파견노동자였다. 메탄올은 잘 알려진 치명적인 위험물질이었지만 대기업의 다단계 하청인 사업주들은 단가가 3분의 1정도라는 이유로 대체물질인 에탄올이 아닌 메탄올을 썼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근로환경에서의 위험노출 정도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비정규직이 위험에 노출될 확률은 최대 1.8배 높았다. 비정규직노동자가 위험에 더 노출된 이유는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을 하고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에게 외주화하는 현상이 고착된 결과이다. 또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단기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 안전교육이나 안전보호구 지급 등에서 소외되고 있다.
 
산업재해의 빈발은 노동자의 건강 및 생명의 위협뿐 아니라 사회적 위험으로도 나타난다. 최근 발생한 이스타항공 부기장의 비행기 이륙 직전 조종석에서 사망, 공황장애로 인한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들의 잇단 자살, 현대중공업의 연이은 산재사망사건은 장시간노동과 비용절감, 그리고 책임자 처벌 없는 법제도의 미비가 가져온 사회적 타살이다. 산업재해는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전의 문제이다. 죽음의 행진을 멈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때이다.
 
 
*이 칼럼은 4월 25일 뉴스토마토(시론)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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