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비정상의 정상화의 길/이정식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winwinmaker@empas.com)
 
구당서(舊唐書)에 나오는 말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이 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이다.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이 호랑이한테 잡혀 먹었는데도 이사를 가지 않고 울고 있는 여인에게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물으니, “이곳은 관리들이 세금을 가혹하게 안물려서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말에서 유래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5일 새해 첫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물면 안 놓는 진돗개 정신으로 공공부문 정상화를 추진하라”고 했다. 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인 2월 25일 다음날, 생활고를 비관한 송파의 세 모녀가 동반 자살함으로써 복지 사각지대의 현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사회안전망에 커다란 구멍이 도처에 뚫려 우리 사회가 결코 안전하지 않음이 확인된 것이다. 하여, 그 동안 부정수급자를 색출하느라 여념이 없던 지자체 공무원들이 허둥대고 있다. 한편, 정부 여당은 대선공약에서 크게 후퇴된 이른바 복지3법(기초연금법, 장애인연금법, 국민기초생활법) 개악을 강행하여 빈곤과 차별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런데도 정국은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첩조작 의혹사건까지 터져 국정원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갑자기 가정맹어호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개념이 없는 정부, 영혼이 없는 공직자, 국민보다는 정권을 우선시하는 공직사회의 비정상적인 풍토가 정상화되지 않는 한 가렴주구(苛斂誅求)는 여말선초나 이조 말엽의 얘기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문제로 되는 불행한 현실이다. 언필칭 국민을 위해서 더 잘하려고 그랬다고 하겠지만 기재부와 복지부의 영역싸움으로 국민연금법이 애초 계획보다 10여 년이 늦은 1988년에야 입법화된 사실이나, 툭하면 나오는 검찰과 경찰과의 수사권 싸움 등은 노동자나 각종 이해집단의 불만과 요구에 대해 법과 원칙을 이야기하며 집단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이는 정부의 주장이 과연 얼마나 국민적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 산하기관 하나 만드는 문제부터 부처간 밥그릇 싸움으로 이상하게 변질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공모제는 어떤가. 무늬만 공모제이지 사실은 낙하산을 정당화하는 장치에 불과한 것 아닌가. 적임자를 물색하여 일을 주고 안되면 책임을 져야할 문제를 책임도 안지고 날로 먹는 행태이다. 꿩먹고 알먹고. 
공공기관 부채는 어떤가. 상당부분 정부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세금을 걷어서 추진해야 할 일을 공공기관이 대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예컨대 4대강 사업 등 정상적인 정책수행 프로세스라면 선거공약으로 제시하고 이에 수반되는 조세부담을 국민에게 평가받고 추진해야 하는데, 조세저항 또는 공공요금 인상 등 국민이 싫어하는 일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원되는 것이 역시 공공기관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선거가 있으면 결국 공공기관이 봉으로 되고 선진화·정상화·혁신의 대상이 되는 그런 비정상이 악순환되고 있다. 손 안대고 코 풀고 책임은 안 지고. 과거 저임금 정책의 일환으로 공무원과 공공부문 임금을 통제한 적이 있다. 노동자들의 불만과 요구를 들어 줘야 하니까, 각종 복리후생비나 자기 임기에 책임을 안져도 되는 먼 훗날의 일이 될 퇴직금 누진제를 도입하였다. 그런데 결국 그것도 행정부와 사법부까지 나서서 없애버렸다. 이래저래 공기업이 만년 봉으로 전락하니까,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차라리 정부 간섭받지 않게 민영화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한다. 정책당국이 설마 여기까지 고려한 것은 아닐 것이다.
 
택시는 정부의 산업정책 부재로 인해 직업 중 거의 막장으로 전락한 상태. 시장논리와 수급조절 실패 등으로 택시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서비스에 대한 승객의 불만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콜밴 택시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88 서울올림픽을 겨냥해서 외국 손님들 짐을 실으라고 한 듯 싶다. 그런데 이것이 화물자동차로 분류가 되어서 문제가 발생했다. 택시 수급조절에 실패하여 택시끼리 과당경쟁을 하다보니, 손님을 두고 기사들끼리 서로 싸우고 신고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 결국, 해법은 항상 콜밴 안에 빈 사과 박스나 여행용 가방을 실어 놓고 사람을 태우는 식으로 넘어 갔다. 잘못된 정책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듯 싶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공인중개사 시험이 몹시 어렵게 출제된 적이 있다.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안전장치로 자격증을 하나 준비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경야독(晝耕夜讀)하여 시험을 보았으나, 사법고시보다 합격률이 낮았다. 하여 당사자들이 과천 정부 종합청사 담을 넘어 농성을 벌였다. 얼마 후, 과천 청사 담벼락엔 휴전선 철조망같은 가시철망이 설치되었다. 또 복수차관제가 도입되었다. 없는 예산에 각 부처가 복수차관을 요구할 것은 뻔한 일. 그렇다면 소관부처가 모범을 보이면서 엄격한 기준을 내세워 국민 세금을 아껴야 할 것 같은데, 자신들이 제일 먼저 복수차관을 두는 모범을 보였다. 사외이사 제도도 차츰 본말이 전도되어 가고 있다. 공기업 분할 매각 역시 ‘낙하산 일자리 창출’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경제 부총리가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을 모아 놓고 정부 정책에 대한 강의를 했다. 당시엔 주말마다 강의를 배치하여 공무원들 의식교육을 시켰다. 군기를 잡았던 것. 상당 부분은 정부 정책 홍보였다. 하여 강의 말미에 질문을 하라고 하자,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부총리 왈, 민간기업은 스탠딩 미팅이다 뭐다 해서 혁신을 하는데, 공무원이 영혼이 없다고 질타를 했다. 며칠 뒤, 국회의원들이 부총리에게 왜 갑자기 정책이 바뀌었느냐고 질타했다. 부총리의 답변은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일보에 크게 보도되었다.
 
현 정부에서의 일이다. 세종시 청사로 부처가 이사를 했다. 노동부와 함께 중앙노동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등도 함께 갔다. 위원회는 그야말로 노사가 직접 참여하는 거의 유일한 정책형성 기구다. 세종시는 분산정책의 일환이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분권이 핵심인데, 아까운 권력은 놓지 않고 사무실만 이전한 것이다. 위원회 몇 개 간다고 해서 얼마나 균형발전이 될까. 민간위원들이 회의가 있을 때마다 세종시로 가야 한다. 이것이 국민을 중심에 두는 고객중심의 행정인가. 노동위원회는 준사법적 기관으로 노동쟁의나 해고 및 차별 사건을 다루는 조직으로서,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으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장관급이다. 그런데, 세종시의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사무실은 노동부 장관실 밑에 있다.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위원회의 독립성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방문객을 위한 표지판도 없었는데, 노동위원회 측의 요구로 문패는 달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무개념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탁상행정은 물론이고 획일주의와 무사안일의 대표적 사례이다.
 
DJ 대통령 시절 역사적으로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였다고 주장된다. 당선자의 권력은 거의 무제한으로 보였다. 여기저기 줄을 대고 한마디로 ‘꼼짝마’ 상태였다. IMF 경제위기까지 겹쳤으니 상상이 된다. 당시 공무원들은 취임식 끝나고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법대로, 규정대로 하면 되니까. 고위공직에 있던 분이 퇴직하였다. 정부가 노동자 편은 못들어도 사용자 편은 들지 말고, 최소한 중립을 지켜야 노동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노동계는 결코 (인생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씁쓸하다. 조정래씨의 장편소설 허수아비라는 책에 고위 공무원은 대통령이 아니라, 재벌과 대형 로펌에서 임명한다고 하는 구절이 떠오른다. 하긴 젊은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경력을 쌓은 다음 고액연봉을 받는 로펌에 가고, 산업별 노조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것이 공정위의 입장이고 보면 그도 그럴 것이다. 지난 연말 철도노조 파업 시 시청 앞에서 양대노총 공동집회가 있었다. 방만경영, 과도한 부채, 과잉복지의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는 부총리의 말에 정부의 정책을 대행하고, 경영참여가 봉쇄된 상태에서 정부의 각종 지침을 받아 낙하산 기관장이 정책결정을 독점하는 상태에서 노동자들은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쓰고 욕을 먹고 구조조정의 불안감에 떨고 있는데, 당시 기관장들은 또 다시 더 좋은 공기업을 찾아 다닌다는 야당 의원의 발언에 우레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긴, IMF 경제위기로 전 국민을 고통받게 하고서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으니 말해 무엇할까. 
 
노동자와 사용자가 갹출하는 고용보험기금과 산재기금이 15조 원 가량이 된다. 이것을 관리하는 사람이 계약직 공무원 달랑 두 명이다. 기금에 펑크가 나면 어쩌냐고 했더니 자신들이 책임진다고 한다. 어떻게? 유능한 공무원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증원을 하라고 해도 기획재정부는 꿈적도 않고 있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기금투자풀에 넣으라는 말만 한다. 국회의 감시기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행정부 우위의 시스템과 선량들 역량의 한계이다. 
DJ는 말했다. 364일 욕해도 좋으니, 딱 한번 표 찍을 때 제대로 찍어달라고 했다. 이제, 노동자들은 공장 안에 매몰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통합과 집중, 연대와 실천만이 희망인 듯 싶다. 이것이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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