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판결과 노동운동의 대응과제/이정식

 

- 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winwinmaker@empas.com)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의 통상임금에 대한 판결로 지난 5월 GM 회장이 민원을 제기하고, 우리나라 대통령이 화답함으로써 촉발되어 2013년 노사정간 논란의 핵심이었던 통상임금 논쟁은 제 1라운드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제 2라운드에 진입했다. 통상임금의 범위와 법적 판단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제 1라운드를 정리한 반면,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근대 사법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잣대로 노동자의 3년치 소급 임금청구권을 제한함으로써 새로운 법률 논쟁을 야기시킴과 더불어 노사의 추가적인 소송 가능성은 물론 입법적, 행정적 후속 대책 마련과 함께 노사의 본격적인 샅바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4월말 60세 정년의무화 법제화 및 향후 예상되는 휴일 초과노동에 대한 할증률 지급 대법원 판결과 더불어 이른바 임금피크제, 성과와 능력과 연계된 임금체계 등 정부와 사용자측의 임금체계 개편 공세와 기본급 중심의 안정적이고 단순한 임금체계 확립이라는 노동계의 대응이 본격적 대회전을 앞두고 있다. 아울러, 장시간 노동관행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도 주요 관심 사항이다. 이하 대법원 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보고 향후 대응 방향을 알아 본다.
 
대법원의 판결 내용은 △일정한 대상 기간에 제공되는 노동에 대응하여 1개월을 초과하는 일정기간마다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노동자가 소정노동을 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지급일 기타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노동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져 있는 임금은 그 지급조건이 성취될지 여부가 불확실하므로 고정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 △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합의는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에 위반되는 내용으로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노사간의 합의는 무효이지만, 과거 법정 기준 이하로 미지급된 각종 법정 수당 등에 대한 추가 임금 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과 기업에 초래될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들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법원은 일정한 고정적 요건을 갖춘 정기상여금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판단한 반면, 고정성 판단기준을 엄격히 함으로써 그동안 앞선 수차례의 법원 판결에서 인정되어온 각종 복리후생적 급여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등 통상임금의 범위를 협소하게 해석, 기존 법원이 유지해 온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에서 상당히 후퇴했다. 모든 임금은 근로의 대가이며, 따라서 임금은 그 성격에 따라 근로의 대가와 노동자의 지위에 따라 지급되는 것으로 나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고, 지난 95년 전원합의체 판결부터 일관되게 견지해 온 임금일체설을 부정하는 듯한 법리를 동원하였다. 또, 계약당사자인 노동자가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에 보장한 임금, 노동조건의 모호성으로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다가 법에 따라 정당하게 권리를 청구하는 것, 즉 ‘강행규정에 위배되어 무효인 합의’를 이유로 미지급 임금을 청구하는 것이 신의칙 위반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해괴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신의칙 위반에 대한 심리란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 달라”,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사용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통상임금 소송은 본질적으로 체불임금을 구하는 소송이다. 사용자가 재산이 없다는 점은 청구의 정당성 여부에서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 강제집행에서나 고민해야 할 문제다.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사정”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도 애매모호하다. 주관적 요건에 대한 판단이 실제 소송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만약 체불임금 해당자 전체가 아닌 일부만 제기할 경우에도 당연히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 회사가 임의로 경영상태를 악화시킨 경우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 등 의문이 꼬리를 문다. 또한 정기상여금에만 위 요건을 추가한다는 것인데, 다른 임금(수당)과 달리 보는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 노동법은 노동조건의 최소를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노동자 보호를 위한 편면(片面)적 강행규정이라는 데 이론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이러한 믿음이 깨지고 말았다. 통상임금이 아니라 다른 제도 운영에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사적합의 내지 사정변경이 법을 우선하게 될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나머지 임금(수당)에 대한 판단은 그동안 유지한 고정성에 대한 의미를 축소하는 데서 출발한다. 전에 언급이 없었던 “근로와 무관하게 지급되거나”, “초과근로를 제공하는 시점에서 노사합의에 따른 그 지급액수를 확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고정성 요건에서 판단해야 한다. 통상임금 요건은 전과 동일하다고 했지만 사실상 전에 없던 고정성 요건을 강화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았던 많은 임금들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이 같은 대법원이 제시한 엄격한 기준이라면 이를 충족하는 임금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실제 이 사건에서 문제된 모든 수당이 고등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받아야 할 지경이다. 판례 변경이유 또한 분명치 않다. 입법목적을 고려하라는 법률해석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다. 고정성에 대한 대법원의 이번 법률 해석은 통상임금 문제의 발단에 대한 인식이 깊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현장에서 운영되는 제 수당은 야간·휴일노동에 대한 할증수당을 줄이기 위해 사용자들이 임의로 만들어 온 게 현실이다. 이러한 노동관행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이 그동안 법원의 태도였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야간·휴일노동이 평상시 소정노동에 대한 대가보다 못한 지금까지의 부당한 현실에 눈을 감았다.  
 
이번 판결로 대법원은 정치, 경제적 고려를 통해 사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우를 범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GM의 민원을 대통령의 발언으로 해결한 꼴이 되어 모양새가 우습게 되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상대적으로 확실한 과거는 묻지 말고,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가라는 주문이다. 사용자에게는 확실한 떡을, 노동자에게는 불확실한 미래를 주었다. 이러한 정치적 고려를 정당화하기 위해 1995년 이후 일관되게 견지해 오던 임금일체설을 부인하고 임금이분설로 회귀하는 듯한 논리를 전개하였으며, 복리후생비까지 확대하던 통상임금 범위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일거에 뒤집는 무리를 범했다. 아울러,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추상적인 민법의 원리를 강행 규정인 근로기준법을 무력화시키는 일반화된 논리를 적용, 노동자의 개별적 권리 청구의 기회를 박탈하였으며, 신의성실의 원칙을 둘러싸고 새로운 분쟁을 야기시킬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의 영향은 업종, 규모, 노사간의 세력관계, 임금구성 체계, 장시간 노동관행 및 교대제 여부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대체적으로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사업장, 상여금의 비중이 높고, 장시간 노동 또는 교대제 가동 사업장 등에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편입으로 임금인상이 기대되며, 이런 사업장의 사용자는 인건비 부담 회피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노동운동의 사법화, 정치의 사법화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과거, 퇴직금 누진제 전원합의체 판결이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리해고도 정당성을 인정한 과거 사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법부의 민주화, 노동운동의 강화가 시급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또한 노동운동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불확실하게 주어진 미래의 과제 즉, 기본급 중심의 임금체계 단순화와 장시간 노동관행을 바꾸고, 사용자의 일방적인 판례 악용과 회피를 위한 편법적·일방적 임금체계 개편시도를 막아 내야 할 중차대한 과제를 부여받게 되었다. 아울러 정치권과 행정부도 입법적 정비와 행정해석 변경 등 다각적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한국노총은 대법원 판결 이후 산하조직에 시달한 지침을 통해 정기상여금 등을 포함한 시간급 통상임금을 재산정할 것, 변동성 성과급이라도 최소 지급액이 정해진 경우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것 등을 주문했다. 즉,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정기상여금(근속기간에 따라 금액이 정해져 있고, 지급시기 이전 중간퇴직자에게도 근무일수에 비례하여 상여금을 지급하는 경우)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각종 법정 수당을 지급하도록 했으며, 정기상여금 등을 포함한 통상임금 범위 재조정, 법정 기준이하로 미지급된 임금의 합리적 청산 방안, 향후 임금체계 변화에 대한 대응책 및 임금구조의 안정화, 단순화를 위한 별도의 임금체계 개편 지침을 마련하여 산하조직에 시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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