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노동' 시간에서 '노동자'의 시간으로/이주희

 '노동' 시간에서 '노동자'의 시간으로
 
-이주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j.lee@ewha.ac.kr)
 
어느 프랑스의 법학자는 미래 노동법이 ‘노동’시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노동자’의 시간을 어떻게 양질로 구성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요즈음처럼 이 말이 가슴 깊이 다가온 적이 없다.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나면 무엇 하나? 하나의 시간제 일자리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만큼, 두 개, 세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가지면 전일제 노동자보다 오히려 더 장시간을 일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노동 ‘시간’에 대한 특별한 전문가도 아니건만, ‘퍼플잡’이 내포하고 있는 명백한 여성 유관성으로 인해 여성인 내게 다양한 자문이 구해졌을 때만 해도 이처럼 답답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미 전 정부에서 시도하여 별 효과가 없었던 제도를 영화 ‘그라운드혹 데이’(국내제목 ‘사랑의 블랙홀’)처럼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무엇보다도 시간제 일자리를 경력단절된 여성의 일자리로 여기는 태도가 마음에 걸린다. 이 경우 경력단절된 여성이 시간제 일자리를 실제로 원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하지만 답은 여성의 시간제일자리 확대가 아니다. 보다 평등한 가사와 육아의 분담을 가능케 하는 노동시간의 재구조화와 충분한 양질의 보육 서비스가 남녀 노동자 모두에게 주어지면 된다. 남성은 장시간 일하느라 자녀와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고, 여성은 경력개발이 제한되는 시간제 일자리에 고립되는 것을 왜 원하겠는가! 그 외에는 전혀 대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면.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가 아니라 변화하는 노동자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비인간적인 장시간 작업환경과 적절한 보육시설 부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시간 비례 원칙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다면 정규직 전일제 노동자와 일하는 시간만 다른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라면 괜찮다는 의견도 문제가 있다.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의 유연성을 자랑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런 시간제 일자리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거의 없지만, 설령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시간제 노동자의 차별 시정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별 시정은 비교대상의 전일제 노동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현재 정부안처럼 시간제에 적합한 일자리에만 시간제 노동자를 투입하게 되면 차별 시정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설사 일하는 시간만 다른 상용형 시간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가정하여도 이 일자리는 ‘양질’이 되기 어렵다. 특히 장시간근로를 통해 직원의 몰입과 충성을 평가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에게 생애주기별 필요에 따라 일하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해 주면 될 것을 왜 굳이 시간제 일자리로 따로 만들려고 할까.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가 아니라 시간‘선택’이 가능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려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고용률 70%라는 수량적 지표에 대한 마땅한 대안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무척 안타깝고, 또 스스로 반성이 많이 되는 부분이다. 평등한 분배와 풍요로운 성장을 보장해 주었던 완전고용의 원칙과 그것이 주는 혜택이 이미 오래 전에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세계화의 시대라 할지라도, ‘일’과 ‘노동’이 개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엄청난 비중에 고려해 볼 때 노동계와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보다 공세적으로 새로운 표준고용관계의 패러다임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노동의 유연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모든 개인의 생애주기별 필요에 따라 적절한 사회적 보호와 함께 주어진다면. 현재 우리는 특정 노동인구에게는 저임금과 나쁜 노동조건을 수반하는 유연화가 집중되고 나머지 인구는 포디즘시대의 경직적 규칙과 장시간근로에 시달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바람직한 유연화를 노동자 개인이 자기 생애주기 속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시간제 노동이 아니라 시간 선택의 자유가 필요하다. 적절한 임금을 받고 적절한 시간을 일할 수 있는. 고용률 70%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강화되어야 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탐색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노동자 삶의 질을 높이고 완전고용에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공공서비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기계화, 자동화로 제조업의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창출은 충분히 가능하며 또 필요하므로. 일과 생활의 균형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자원봉사와 직접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시민의 정치 참여를 위해서도 우리는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적절한 노동자 시간을 확보하여야 한다. 우리의 뒷 세대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답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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