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노동조합의 우울한 자화상 /이상헌

-이상헌 ILO 연구조정관(genevelee@gmail.com)
 
전설처럼 전해지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발언이 있다. "내가 만일 공장에 가서 일하게 된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바로 노조 가입이다" (1).
 
생활 수준의 향상과 역사적 진보를 위해 노동조합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믿었고, 그 믿음을 실질적인 노동정책의 대전환으로 이끌어내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었으니, 이런 발언은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미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노동법과 노사관계 제도를 도입한 장본인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당시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저항 덕분에 가능했다. 루즈벨트 행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노동조합은 급속히 팽창했다. 대통령도 노조에 가입하고 싶었다고 하는 판국이니, 노조에 대한 주저함이나 두려움은 썰물처럼 밀려났다. 노동조합의 황금시대는 그렇게 찾아왔다.
 
하지만, 위기가 곧 뒤따랐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물러나자마자, 공화당은 노조활동을 제약할 수 있는 법률적 조치들을 도입했다. 1947년 태프트 하틀리 법(Taft–Hartley Act)이 제정되어, 노조 결성은 전체 노동자의 과반수 지지가 있을 때만 가능하게 하고, 이렇게 어렵사리 결성된 노조의 활동에 대한 엄격한 제약도 보태졌다. 이 법안 덕분에 그간 분열된 노조가 단결하는 계기가 마련되어 AFL과 CIO의 양대노조가 통합되었지만, 미국의 노조는 이때부터 힘을 서서히 잃어갔다. 1960년대 이후로 지속적으로 진행된 노조 조직률의 하락은 "자유 낙하"에 가깝다. 30%이상에 달하던 조직률은 이제 10% 수준에 근접해 있다. 그나마 공공부문을 제외하면, 한자리 숫자가 된다. (그림 참조)
 
노조의 약화는 일부 기업에겐 환영할 만한 일이었겠지만, 사회경제적 손실도 적지 않았다. 노조 조직률이 20% 이하로 떨어지면서, 노동자의 교섭력은 현저히 약화되었고 임금 인상은 억제되었다. 노동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나, 임금은 이를 따르지 못했다. 이윤몫은 폭증했다. 임금 불평등도 증가했다.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경제의 도래"를 외치는 목소리에 묻혔다. 노동자의 상대적 구매력은 약화되면서, 가계부채는 증가했다. 이런 여러 요인들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 오늘날의 경제위기 (Great Recession)다.
 
이번에는 오바마가 제2의 루즈벨트를 자처하고 나섰다. 2007년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그는 소리높였다. "내가 백악관에 있는 동안 미국 노동자의 결사 및 단체협상권이 거부당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당장 편안한 신발로 바꾸어 신고,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피켓 라인에 서겠다." (2) 약속대로 오바마는 당선 이후 정책 변화를 모색했다. 저임금 노동자를 돕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에서 시작하여, 최근에는 노조 결성을 지원하는 노력을 해왔다.
 
기회도 왔다. 그것도 미국 노조의 핵심인 자동차 산업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생겼다. 미국 자동차 노조 (UAW)는 한때 포드, GM, 크라이슬러 등 3대 자동차 회사을 아우르는 막강한 노조였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강한 남부 지역으로 공장들이 옮겨 가면서 그 영향력이 현저히 줄었다. 따라서, 노조의 부활이라면 여기서 시작해야 했다. 정치적 환경도 우호적인데다가, 마침 폭스바겐은 미국 공장만이 무노조 상태라는 독일 노조의 비판에 직면하여 노조 결성을 환영한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이에 따라 노조 결성 작업에 착수했다. 투표를 준비했고, 과반 득표를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공화당과 지역 정치인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UAW는 승리를 낙관했다. 노동자를 위한 노조를 만든다는 데 그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당위론이 득세했다. 오바마도 공화당을 견제하는 발언을 통해 노조 편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투표함을 열어 보니, 결과는 적지 않은 표 차이의 패배였다. UAW는 일제히 "외부 세력 개입"을 비난했지만, 투표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오바마는 루즈벨트가 아니었고, 이 두 대통령 사이에 놓인 70년의 세월 동안 노동자와 노조 모두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노조의 궁색해진 처지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미국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노조 조직률도 하락추세를 면하지 못했지만, 그나마 하락 수준은 적다. 하지만, 노조가 종이 호랑이가 된 지는 오래다. 1990년대 이후로 만성적인 불황이 지속되면서, 노조는 임금협상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다. 그 유명한 "춘계투쟁" (춘투)도 매년 반복되는 꽃구경이 되어 버렸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노조의 하락은 자충수가 되었다. 임금이 제대로 오르지 않으니, 소비 구매력은 떨어지고, 결국 이것이 내수 부진으로 연결되어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서, 디플레이션의 그늘에서 빠져 나올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가 나섰다. 임금 인상을 외쳐봐야, 기업도 노조도 움직이지 않으니, 총리가 작년부터 직접 기업을 만나면서 통사정을 했다. 노조에 대한 열렬한 그의 호소도 빈 메아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아예 협박과 강제를 동원했다. 올해 춘투를 제대로 하라고 주문했고, 대기업들은 특히 무조건 임금 인상을 하라고 했다. 그래도 기업이 미적대고 노조도 자신없어 하자, 급기야 임금 인상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들의 명단을 작성해서 발표하겠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야쿠자"로 변신했다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아베 정부는 개의치 않는 눈치다.
 
이렇게 떠밀려, 토요타가 먼저 나섰다. 기업과 노조는 0.8% 임금 인상안에 합의했다. 다른 기업도 잇따라 비슷한 규모의 임금 인상안을 발표하고 있다. 그나마 이것도 대기업 얘기일 뿐, 중소기업 쪽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임금 인상이 약 0.3%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최소 2%로 보고 있고, 올 하반기에는 부가가치세 상승도 예정되어 있다. 쥐꼬리 만큼 임금은 오르고, 물가는 산만큼 오르는 형세다. 정부가 총동원되어서 이룬 임금 인상은 결국은 실질임금 삭감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태평양을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일본과 미국은 이제 노동조합에게 어려운 공통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거처럼 노조 활동의 어려움을 마냥 외부 정치환경에만 돌릴 수 없다. 노동자가 왜 노조를 멀리 하려는지, 또 노조는 왜 노동자의 생활 향상과 사회적 진보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없게 된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묻고 있다. 경제만 위기가 아니다. 노조도 위기다.
 
서두에 인용한 노조에 대한 열정적인 발언은 오랫동안 루즈벨트의 것이라고 믿어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그가 말했을 법해서 무조건 믿었으나,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는 모양이다. 두 나라 노조의 처지도 그러하다. 당위론과 믿음을 넘어, 노조가 온 몸으로 그 존재를 증거해야 할 시간이다. "증거의 날"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 If I went to work in a factory, the first thing I'd do would be to join a Union.—Franklin D. Roosevelt
(2) If American workers are being denied their right to organize and collectively bargain when I'm in the White House, I will put on a comfortable pair of shoes myself and I will walk on that picket line with you as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Because workers deserve to know that somebody is standing in their corner.—Barack Obama (as candidate), November 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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