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거꾸로 가는 공기업 정상화정책, 노조가 바로 잡아야/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3월 3일부터 칼럼 <연구소의 창> 연재를 재개합니다. 주요 필진은 연구소 성원과 이사진, 노동계 인사 등입니다. 칼럼은 격주 월요일 홈페이지에 게재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roh4013@hanmail.net)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부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공공부문 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였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이들 정부들이 추진한 공공부문 정책들이 다 실패했다는 점이다. 역대 정부들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했던 공공부문 정책들은 왜 실패하였는가? 공공부문 개혁의 비전과 철학의 부재이다. 공공부문의 혁신 및 효율성 제고 과제가 민영화 또는 시장주의적 경쟁체제 도입으로 대체되었고,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개혁의 주체가 아닌 배제의 대상이었다. 결과적으로 공공기관을 포함한 공공부문들은 MB정부를 경과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공공성의 담지자(擔持者)가 아니라 치유하기 어려운 골칫덩어리의 상징이 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공기업 정상화 정책도 역대 정부들이 실패한 길을 답습하고 있다. 먼저, 공공기관들의 부채 원인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공기업들을 비효율과 방만 경영에 따른 척결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삼척동자도 알듯이 주요 공기업들의 부채가 MB정부에서 2배 이상 증가한 것은 4대강 사업, 해외자원개발, 보금자리주택 등 정부 정책을 추진한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책임을 묻지 말라하고, 노조의 무리하고 과도한 복리후생비가 핵심 원인이라 호도한다. 노조를 다 때려잡아도, 주요 38개 기관의 복리후생비 감축액은 1,600억 원으로 전체 감축규모의 0.4%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비효율 경영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경영진의 낙하산 인사를 보면 현 정부정책의 허구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중앙일보가 295개 공공기관을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2003년 11월 “이제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는 발언 이후 두 달 사이에 새로 임명된 40명의 공공기관장·감사 가운데 15명(37.5%)이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이었다. 박 대통령은 낙하산인사에 대한 과거 발언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말을 바꾸었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공기업 정상화 정책이 MB정부 초기의 ‘선진화 정책’과 차이가 없는 시장주의적 개혁, 노동조합 무력화 정책, 국민 부담만 높이는 서비스 요금 인상 정책, 공기업 자산의 헐값 매각으로 귀결될 것임을 자각한 공공기관노동조합들의 대응도 본격화되고 있다. 199개 공공기관 노조대표자들은 2월 27일 회의를 갖고 단체교섭권을 산별연맹과 양대노총 공공부문 공동대책위원회에 위임하기로 결의하고, 공기업 정책의 실질적 결정권자인 정부와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였다. 공공기관노조들의 대정부 교섭 요구는 공공기관의 실질적 사용주가 ‘정부’라는 점, 공공기관 정책의 입안 및 집행자가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점에서 당연하며, 합당한 요구이다. 하지만 정부는 일언지하(一言之下)로 공공기관노조들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제 답은 공공기관노동조합에게 넘어 왔다. 정부의 비정상적 조치를 정상화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노동조합 밖에 없다. 공공부문노조들은 지난 시기 공공부문의 실질적 개혁과 혁신을 가로 막아 왔던 법·제도와 관행을 혁파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공공기관의 만성화된 낙하산인사, 공공성을 파괴하는 경영평가제도,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운영위에 대한 통제, 경영평가성과급을 통한 경쟁 유발 등은 공공기관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이다. 공공기관의 진짜 정상화를 위한 싸움은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공부문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추진해 나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철도 민영화 반대 투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국민들의 지지와 엄호를 노조 스스로의 결단과 강고한 투쟁을 통해 마련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노조들이 이번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적인 결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회 불평등의 심화와 노동 양극화 속에서, 일반 국민들의 공공부문 종사자와 공공부문노조에 대한 시각은 곱지만은 않다. 박근혜 정부의 비이성적 정책에 맞서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적 고통분담과 대안적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경영평가성과급의 연대기금화 전략, 민관대등의 원칙을 현저히 벗어난 과도한 복리후생의 자진 폐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정규직노조의 연대(양보)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공공기관노조들의 내부 정비와 연대 강화이다. 그 동안 공공기관노조들은 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제에도 개별 기관별 분산적인 대응을 뛰어넘지 못하였다. 이번 투쟁의 관건은 양대노총의 공조와 공공기관노조들 간의 연대를 얼마만큼 강력하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과거와 같이 기관별 실리주의가 연대의 장애 요인으로 등장할 경우 공공기관노조들은 더 이상 위력적인 대응을 조직할 수 없을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조치는 거꾸로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 공공기관의 역할, 공공부문노조운동의 미래를 고민하게 하는 사회적 학습의 광장을 만들었다. 국제공공노련(PSI)은 “공공서비스가 답이다”라는 선언을 통해 공공부문노조운동의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시장 기능 강화 중심의 세계화가 진행 됨에 따라 사회적 격차가 심화되는 속에서 사회서비스 및 재화의 분배적 형평성이 배려되는 ‘질 좋은 공공서비스(Quality Public Service)’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공공서비스의 질(質) 향상과 확대야말로 공공기관노동조합들이 만들어나갈 역사적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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